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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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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관

천하관의 개념적 정의와 성격

천하관(天下觀)은 전근대 동아시아 사회에서 형성된 보편적 세계관이자 정치 질서의 총체를 의미한다. 어원적으로 천하(天下)는 ’하늘 아래의 모든 세상’을 뜻하며, 이는 단순한 지리적 영역을 넘어 형이상학적 원리인 (天)의 의지가 미치는 보편적 공간을 상징한다. 주나라 초기에 형성된 이 개념은 천자(天子)가 천명(天命)을 받아 다스리는 통치 영역이라는 정치적 함의를 지니게 되었으며, 이후 유교 사상의 발달과 함께 도덕적 가치와 문명적 질서가 구현되는 장으로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천하관의 핵심적 성격은 수평적 국경에 기반한 근대적 주권 국가 개념과 달리, 중심으로부터 주변으로 확산되는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질서에 있다. 천하의 중심에는 도덕적 완성을 상징하는 천자가 존재하며, 그로부터 멀어질수록 문명의 정도가 낮아진다는 화이론(華夷論)적 인식이 내재되어 있다. 이는 지리적 거리가 곧 문화적 수준의 격차로 치환되는 오복(五服) 제도로 구체화되었다. 이러한 구조에서 천하는 고정된 영토적 경계가 아니라, 문명의 빛이 도달하는 범위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문화적 지평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천하관은 특정한 민족이나 국가의 이익을 대변하기보다는, 인류 보편의 도덕적 질서를 지향하는 일종의 ’세계 제도(world institution)’로서의 성격을 지닌다.1)

또한 천하관은 정치와 윤리가 결합된 일원론적 우주관을 반영한다. 천하의 질서는 인간 세계의 인위적인 법률보다는 하늘의 섭리와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禮)를 통해 유지된다고 믿어졌다. 이는 동아시아 국제 관계의 근간이 된 조공·책봉 체제의 사상적 기초가 되었으며, 주변국들은 중화의 문명적 가치를 공유함으로써 천하 질서의 일원으로 편입될 수 있었다. 즉, 천하는 물리적 강제력에 의한 지배 체제가 아니라 문명적 권위에 대한 자발적 동의와 내면화된 질서를 지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천하관은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지양하고, 문화적 동질성을 바탕으로 한 거대한 공동체적 질서를 구축하려 했던 동아시아 특유의 세계 인식 방식이다.

천하의 어원과 공간적 범위

천하(天下)라는 용어는 자구상 ’하늘 아래의 온 세상’을 의미하며, 이는 고대 중국의 우주론적 세계관과 정치적 정당성이 결합된 독특한 개념적 지표이다. 어원적으로 천하는 상제(上帝) 혹은 (天)의 의지가 지상에 투영되는 공간적 범위를 뜻한다. 주나라 초기 천명 사상이 확립되면서, 지상의 통치자인 천자는 하늘로부터 통치권을 위임받아 천하를 다스리는 유일한 주권자로 규정되었다. 이 시기의 천하는 단순한 물리적 영토를 넘어, 천자의 덕화(德化)가 미치는 도덕적 질서의 총체를 상징하게 되었다. 시경서경 등의 고전에서 묘사되는 천하는 하늘이 덮고 있는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보편성을 지니며, 이는 특정 국가의 경계를 초월하는 무한한 확장성을 내포한다.

초기 천하의 공간적 범위는 중원을 중심으로 하는 위계적이고 동심원적인 구조로 설정되었다. 대표적인 공간 모델인 오복(五服) 체제는 천자가 거주하는 왕기(王畿)를 중심으로 거리에 따라 전복(甸服), 후복(侯服), 수복(綏服), 요복(要服), 황복(荒服)으로 구분하여 차등적인 통치 질서를 부여하였다. 이는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갈수록 문명의 수준과 정치적 결속력이 약화되는 구조를 보여준다. 또한 구주(九州) 개념은 천하를 아홉 개의 지역으로 분할하여 인식함으로써, 산천의 형세와 토질에 따른 지리적 구획과 행정적 지배의 가능성을 동시에 모색하였다. 이러한 공간 인식은 천하가 고정된 영토가 아니라, 중심의 권위가 투사되는 가변적이고 유동적인 범위임을 시사한다.

천하의 개념적 진화에서 주목할 점은 지리적 범위가 문화적 범위로 전이되는 과정이다. 초기에는 황하 유역의 특정 지역을 지칭하던 공간적 의미가 점차 예악도덕이라는 문명적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적 범위로 확장되었다. 이는 화이론의 성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화의 문화를 수용하고 실천하는 지역은 천하의 핵심부로 간주되었으며, 그렇지 못한 주변부는 이적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고정된 혈통이나 지리적 경계에 국한되지 않았으며, 문명적 교화를 통해 이적이 중화로 편입될 수 있다는 문화적 포용성을 바탕으로 하였다.

결과적으로 천하는 물리적 세계 전체를 지향하는 보편적 지평인 동시에, 중화 문명이라는 가치 체계를 공유하는 문화적 공간으로서의 이중적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인식의 확장은 훗날 동아시아 전역을 하나의 거대한 문화권으로 묶어내는 사상적 토대가 되었으며, 단순한 지배 영역의 확장을 넘어 문명적 질서의 확산이라는 관점에서 천하를 재정의하게 하였다. 현대 학술 담론에서도 이러한 천하 개념은 서구의 국가 개념과는 차별화되는 포괄적이고 관계론적인 세계 인식 모델로 재해석되고 있다2).

정치 공동체로서의 천하

전통적 동아시아 사유에서 천하는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나 물리적 영토의 집합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주의 근원적 원리인 (天)의 의지가 지상에 구현된 도덕적 질서의 총체이자, 그 질서를 공유하는 정치 공동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천하는 국경선에 의해 분절되는 근대적 주권 국가 체제와는 달리, 중심에서 주변으로 갈수록 그 영향력이 점진적으로 약화되는 위계적이고 동심원적인 구조를 지닌다. 이러한 정치 공동체의 정점에는 천자(天子)가 존재하며, 그는 하늘로부터 받은 통치권인 천명(Mandate of Heaven)을 바탕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유일한 정당성을 확보한다.

천자가 천하를 통치하는 원리는 물리적 강제력인 패도(覇도)가 아니라, 도덕적 감화력인 왕도(王道)에 기초한다. 정치 공동체로서의 천하는 통치자의 개인적 덕성이 백성에게 전달되어 사회 전체가 조화를 이루는 덕치주의(德治主義)를 지향한다. 이 과정에서 예악(禮樂)은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적인 규범 체계로 작용한다. 예(禮)는 사회 구성원 간의 위계와 분수를 규정하여 갈등을 예방하고, 악(樂)은 정서적 공감을 통해 공동체의 통합을 꾀한다. 즉, 천하라는 정치 공동체는 법적 구속력보다 도덕적 자율성과 문화적 정체성에 의해 결속되는 성격을 띤다.

정치 공동체로서 천하의 구성원을 규정하는 기준은 혈통이나 인종이 아닌 문화적 수준, 즉 중화(中華)의 가치를 수용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이를 화이론(華夷論)이라 하며, 중화의 문명을 받아들인 집단은 천하의 일원으로 간주되지만, 그렇지 못한 집단은 이적(夷狄)으로 분류되어 질서의 변방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이 구분은 고정 불변한 것이 아니라, 도덕적 교화에 따라 이적이 화(華)로 편입될 수 있는 가변성을 지닌다. 이러한 개방성은 천하가 지닌 보편적 제국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하며, 주변 민족들이 중화 질서에 편입되도록 유도하는 정치적 기제로 작동하였다.

결과적으로 천하는 대일통(大一統)이라는 이상 아래 모든 존재가 하나의 질서 속에 통합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다. 이는 단순히 영토를 확장하는 제국주의와는 구별되며, 보편적 가치인 (仁)과 (義)가 온 세상에 실현되는 도덕적 공동체를 구축하려는 정치적 기획이었다. 이러한 천하관은 전근대 동아시아 국제 관계의 근간이 되었으며, 각국은 이 거대한 정치 공동체 내부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3)

천하관의 사상적 기초

천하관의 형이상학적 토대는 (天)에 대한 독특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전통적 동아시아 사유에서 천은 단순한 물리적 하늘이나 초월적 신격에 그치지 않고, 우주 만물의 질서와 인간의 도덕적 가치를 규정하는 근원적 원리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관점은 우주의 자연적 질서와 인간 사회의 도덕적 질서가 본질적으로 하나라는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으로 이어진다. 천하(天下)라는 개념 자체가 ’하늘 아래의 모든 세상’을 의미하듯이, 천하관은 천이 부여한 보편적 질서가 지상에 구현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천하는 단순히 지리적 경계를 나타내는 용어가 아니라, 천의 섭리가 미치는 도덕적·정치적 공동체의 범위를 상징한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전제는 천명(天命) 사상을 통해 정치적 정당성으로 구체화된다. 유교의 통치 담론에서 천자(天子)는 천으로부터 천하를 다스릴 권한을 위임받은 유일한 존재로 설정된다. 그러나 천명은 특정 통치자나 혈통에 영구히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의 도덕적 역량인 (德)에 따라 가변적으로 작용한다. 맹자가 제시한 왕도 정치의 논리에 따르면, 통치자가 덕을 잃고 민심을 저버릴 경우 천명은 거두어지며 이는 역성혁명의 근거가 된다. 이처럼 천하관은 통치자의 권위를 절대화하는 동시에, 그 권위가 천의 도덕적 질서에 부합해야 한다는 엄격한 윤리적 제약을 가하는 이중적 구조를 지닌다.

천하관을 지탱하는 실천적 원리로서 예악(禮樂)은 우주의 조화를 인간 사회에 투영하는 핵심 기제이다. 공자 이래의 유교 전통에서 (禮)는 사회적 위계와 질서를 유지하는 규범이며, (樂)은 구성원 간의 정서적 화합을 도모하는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예악은 단순한 관습이나 법령을 넘어, 천지의 질서와 조화를 모방한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천하 질서에 편입된다는 것은 단순히 정치적 복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악이라는 보편적 문명 규범을 수용하여 도덕적 주체로 거듭남을 의미한다. 이는 천하관이 혈통이나 인종이 아닌 문화적 성취를 기준으로 세계를 구분하는 화이론(華夷論)적 성격을 띠게 된 근본적인 이유이다.

또한 천하관은 가족 윤리를 사회와 국가, 나아가 전 우주로 확장하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논리 구조를 가진다. 대학에서 제시된 격물(格物)·치지(致知)에서 시작하여 평천하(平天下)에 이르는 과정은, 개인의 내면적 수양이 가정을 다스리는 제가와 국가를 다스리는 치국을 거쳐 천하의 평화로 확장됨을 보여준다. 이러한 확장적 사고는 천하를 하나의 거대한 가족적 유대 관계로 파악하게 하며, 천자를 천하의 어버이로 상정하는 가부장적 국가관의 기초가 된다. 이는 서구 근대의 주권 국가 체제가 상정하는 평등한 개별 주체 간의 계약 관계와는 본질적으로 궤를 달리하는, 유기체적이고 위계적인 세계 인식이다.

후대에 이르러 성리학(性理學)은 이러한 천하관의 사상적 기초를 더욱 정교한 철학적 체계로 완성하였다. 주희를 비롯한 성리학자들은 이기론(理氣論)을 바탕으로 천하의 질서를 우주론적 실재인 (理)의 발현으로 설명하였다. 모든 만물이 동일한 리를 공유한다는 이일분수(理一分殊)의 원리는 천하가 하나의 보편적 진리 아래 통합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화하였다. 동시에 리가 기(氣)의 제약에 따라 차별적으로 나타난다는 논리는 현실적인 화이(華夷)의 격차와 위계적 국제 질서를 정당화하는 이론적 도구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결과적으로 천하관은 형이상학적 보편주의와 현실적 차별주의가 결합된 독특한 세계 인식 체계로서 동아시아의 장기적 안정과 질서를 규율하는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천명 사상과 덕치주의

하늘의 뜻에 따라 천하를 다스린다는 천명 의식과 통치자의 도덕성을 강조하는 덕치주의의 연관성을 다룬다.

화이론적 세계 인식

문명화된 중심인 화와 주변부인 이를 구분하는 화이 질서의 논리적 구조를 설명한다.

문명과 야만의 구분 기준

혈통적 차이가 아닌 예악과 도덕이라는 문화적 척도에 의한 화이 구분법을 상세히 기술한다.

존왕양의와 춘추대일통

중심 권위를 옹호하고 주변의 위협을 물리쳐 천하의 통일을 유지하려는 정치 사상을 설명한다.

천하 질서의 역사적 전개

천하 질서의 역사적 전개는 단순한 영토 확장의 과정을 넘어, 중화(中華)와 이적(夷狄)의 관계를 규정하는 정치적·문화적 논리가 시대적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과정이었다. 초기 천하관의 기틀은 주나라(周)의 봉건제(Feudalism)와 천명(Mandate of Heaven) 사상에서 비롯되었다. 주나라의 통치자는 자신을 하늘의 아들인 천자(Son of Heaven)로 규정하고, 혈연적 유대와 예치(禮治)를 통해 제후들을 통제하는 위계적 질서를 수립하였다. 이 시기의 천하는 지리적 실체라기보다 도덕적 정당성을 공유하는 문화적 공동체의 성격이 강하였으며, 천명은 통치자의 덕성에 따라 옮겨갈 수 있다는 가변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춘추전국시대의 혼란기를 거치며 천하관은 더욱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논리로 발전하였다. 제자백가(Hundred Schools of Thought)는 각기 다른 관점에서 천하의 안정을 도모하는 통치 원리를 제시하였으며, 이는 이후 통일 제국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진나라(秦)에 의한 최초의 통일은 분절되었던 천하를 하나의 행정 단위인 군현제(Commandery-prefecture system) 체제로 통합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어지는 한나라(漢) 시기에는 동중서 등의 유학자들이 천인감응설(Theory of Interaction between Heaven and Mankind)을 통해 황제 권력을 우주론적 질서와 결합하였다. 이로써 천하관은 유교적 가치관을 핵심으로 하는 관료적 통치 체제로서 제도적 완결성을 갖추게 되었으며, 중화와 이적을 구분하는 화이론(Sinocentrism)이 체계화되었다.

위진남북조 시대수나라, 당나라 시기를 거치며 천하 질서는 다원적이고 개방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특히 당나라는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주변 민족과 활발히 교류하며, 천자가 유목 민족의 우두머리인 천가한(Heavenly Qaghan)의 지위를 겸하는 이중적 통치 구조를 보이기도 하였다. 이 시기의 조공(Tribute)과 책봉(Investiture) 체제는 중화 제국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 질서의 핵심 기제로 자리 잡았으며, 주변국들은 중화의 문물을 수용하는 동시에 독자적인 국가 정체성을 형성해 나갔다. 이는 천하관이 단순히 중국의 일방적인 지배 논리가 아니라, 동아시아 전역이 공유하는 국제적인 규범으로 기능하였음을 의미한다.

송나라(宋)에 이르러 북방 민족인 요나라, 금나라 등의 압박이 거세지자, 천하관은 내성적이고 문화적인 정체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성리학(Neo-Confucianism)의 발달과 함께 강조된 명분론은 혈통이나 무력보다 예악(Ritual and Music)과 도덕이라는 문화적 척도를 화이 구분의 절대적 기준으로 삼았다. 이러한 경향은 원나라(元)의 몽골 지배기를 거쳐 명나라(明)에서 한족 중심의 질서 회복으로 이어졌으며, 이후 청나라(淸)는 만주족의 통치 아래 한족의 유교 질서와 유목 민족의 지배 방식을 결합한 거대한 통합적 천하를 구축하였다. 청나라는 스스로를 중화의 정통 계승자로 자처하며 다민족 제국을 운영하였고, 이는 근대 서구의 주권 국가 체제가 유입되기 전까지 동아시아의 보편적 질서로 유지되었다.

주나라의 봉건제와 초기 천하관

혈연적 유대와 예법을 바탕으로 형성된 초기 형태의 천하 질서를 고찰한다.

진한 제국의 성립과 천하 질서의 제도화

통일 제국의 등장과 함께 천하관이 관료적 통치 체제 및 우주론과 결합하는 과정을 다룬다.

성리학적 명분론과 송명의 천하관

성리학의 발달과 함께 더욱 엄격해진 화이론적 명분론이 천하관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다.

천하 질서의 운용과 국제 관계

전통적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핵심은 조공책봉의 결합으로 형성된 위계적 외교 체제에 있다. 이는 천하관이 구체적인 정치 제도로 구현된 형태이며, 중화 중심의 세계관을 현실의 국제 관계에 투영한 결과이다. 책봉이란 중국의 황제가 주변 국가의 군주에게 일정한 관직이나 작위를 수여함으로써 그 통치적 정당성을 공인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를 통해 주변국의 군주는 천자가 다스리는 천하 질서 내부의 구성원으로 편입되며, 자국 내에서의 권위를 강화하는 정치적 자산을 획득하였다. 반면 조공은 주변국이 정기적으로 사절단을 파견하여 현지의 특산물을 헌상하는 의례적 행위로, 이는 외교적 복속의 상징인 동시에 경제적·문화적 교류의 통로로 기능하였다.

이 체제는 표면적으로는 군신 관계를 모방한 수직적 위계 구조를 띠고 있으나, 실제 운용에 있어서는 고도의 정치적 실용주의가 작동하였다. 사대라는 명분은 주변국이 강대국인 중국과의 평화적 관계를 유지하고 선진 문물을 수용하기 위한 외교적 방편으로 활용되었으며, 중국 왕조 역시 과도한 직접 통치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 책봉을 통한 간접적인 영향력 행사를 선호하였다. 특히 조공은 단순한 일방적 헌상이 아니라, 중국 황제가 조공품의 가치를 상회하는 답례품을 하사하는 회사의 형식을 취함으로써 일종의 관무역 성격을 띠었다. 이러한 상호 호혜적 구조는 동아시아 내에서 장기간의 평화와 안정적인 통상 환경을 조성하는 기틀이 되었다.

천하 질서의 운용은 시대와 정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모하였다. 송대와 같이 북방 민족의 세력이 강성했던 시기에는 명목상의 조공·책봉 관계와 실제 역관계 사이의 괴리가 발생하기도 하였으며, 이는 체제의 변용 혹은 다원적 천하관의 출현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4). 그러나 전반적으로 조공과 책봉은 화이론에 기반한 문명적 질서를 유지하고, 각국의 주권적 자율성을 일정 부분 인정하면서도 거시적인 통합성을 유지하는 독특한 국제 정치 모델로서 기능하였다.

이러한 위계적 질서는 단순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넘어, 유교적 예치주의가 국제사회에 투영된 산물이었다. 주변국은 중국의 역법을 받아들이는 정삭(正朔)의 수용을 통해 천하 질서에 동참함을 증명하였고, 이는 한자·유교·불교·율령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 문화권의 동질성을 확보하는 토대가 되었다. 이러한 체제는 19세기 서구의 만국공법과 평등한 주권 국가 체제가 유입되어 전통적 천하관이 해체되기 전까지 동아시아 국제 관계를 규율하는 가장 보편적인 원리로 군림하였다.

조공 책봉 체제의 구조

형식적인 주종 관계를 통해 평화와 교역을 유지했던 동아시아 특유의 외교 형식을 다룬다.

기미 정책과 외복의 관리

중심 권력이 주변 민족을 간접적으로 통제하고 회유하기 위해 사용한 전략적 수단들을 설명한다.

주변국의 천하관 수용과 변용

동아시아의 전통적 국제 질서를 규정하는 핵심 논리인 천하관은 중국이라는 단일 중심에서 주변부로 일방적으로 전파된 정적인 체계가 아니었다. 한국,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의 주요 국가들은 중화(中華) 문명을 보편적 가치로 수용하면서도, 각자의 정치적 필요와 역사적 맥락에 따라 이를 재해석하여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히 중국 중심의 질서에 편입되는 것을 넘어, 자국을 세계의 또 다른 중심 혹은 독자적인 천하로 설정하려는 자주성의 발현이기도 하였다.

조선은 성리학적 명분론을 바탕으로 중화 문명의 정통성을 계승하려는 소중화(小中華) 사상을 발전시켰다. 특히 명나라가 멸망하고 만주족의 청나라가 중원을 차지하자, 조선의 지식인들은 오랑캐가 지배하는 중국 본토 대신 조선이 유일한 문명의 보존자라는 인식을 강화하였다. 이는 청의 물리적 위세를 인정하면서도 문화적·도덕적 우월성을 견지하려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조선의 천하관은 보편적 도덕 가치인 예악(禮樂)을 기준으로 화(華)와 이(夷)를 구분함으로써, 지리적 중심성을 극복하고 문화적 중심성을 획득하고자 한 특징을 보인다.

일본은 지리적 고립성과 독자적인 정체성을 바탕으로 중국 중심의 조공 체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천하관을 형성하였다. 고대부터 일본은 자국의 군주를 천황(天皇)이라 칭하며 중국의 천자(天子)와 대등하거나 별개인 독자적 위상을 강조하였다. 특히 에도 막부 시기에는 일본을 중심으로 주변의 조선, 유구(琉球), 아이누 등을 재편하려는 ’일본형 화이 의식’이 나타났다. 이는 일본을 신이 지키는 나라로 보는 신국 사상과 결합하여, 중국 중심의 천하관을 부정하고 일본을 세계의 본원적 중심으로 설정하는 국수주의적 세계관으로 변모하기도 하였다.

베트남은 중국과 국경을 맞댄 지리적 조건 속에서 대외적으로는 조공과 책봉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대내적으로는 황제국을 자처하는 이중적 천하관을 운용하였다. 대월(大越)의 군주들은 스스로를 ‘남제’(南帝)라 칭하며 중국의 ‘북제’(北帝)와 대등한 존재로 인식하였다. 베트남은 자신들을 중심으로 주변의 소수민족과 이웃 국가들을 아우르는 독자적인 천조(天朝) 질서를 구축하였으며, 이를 통해 중화 문명의 보편성을 수용하는 동시에 베트남인의 독자적인 천하 영역을 수호하고자 하였다.

이처럼 주변국들의 천하관 수용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보편적 문명 담론을 자국의 권위를 정당화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도구로 변용한 과정이었다. 각국은 화이론적 틀을 공유하면서도 그 내부의 중심점을 자국으로 이동시킴으로써 다원적이고 중층적인 동아시아 질서를 형성하였다. 이러한 독자적 천하관의 전개는 전근대 동아시아 국제 관계가 단일한 위계 구조가 아닌, 각국의 자의식과 역동적인 상호작용 속에 존재했음을 보여준다.5)

한국의 소중화 사상과 독자적 천하관

조선 시대에 확립된 소중화 의식과 그 속에 내포된 문화적 자부심 및 독자적 천하 인식을 다룬다.

일본의 신국 사상과 독자적 천하관

일본이 중화 질서에서 벗어나 자국을 중심으로 세계를 인식하려 했던 신국 사상의 전개 과정을 설명한다.

근대적 전환과 천하관의 해체

서구 주권 국가 체제의 유입으로 인해 전통적 천하관이 붕괴하고 근대적 만국공법 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을 다룬다.

만국공법의 유입과 주권 개념의 형성

위계적 천하 질서가 평등한 주권 국가 간의 국제법 질서로 대체되는 과정을 분석한다.

전통적 천하관의 현대적 변용과 함의

현대 동아시아 담론에서 천하관이 지니는 학술적 가치와 새로운 공동체론으로서의 가능성을 고찰한다.

1) , 2) , 3)
‘천하(天下)’는 작동할 수 있을 것인가? : 자오팅양(趙汀陽)의 ‘천하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534056
4)
10~12세기 조공·책봉체제의 실태와 변용에 관한 연구, https://scholar.kyobobook.co.kr/article/detail/4010028339950
5)
김경래, 다시, 中華란 무엇인가? - 檀上寛의 󰡔天下와 天朝의 中国史󰡕 (2016, 日本 岩波新書)와 朝鮮 中華 연구, https://newdept.inha.ac.kr/sites/inhakorea/upfiles/tb_kor_study/49/016.pdf
천하관.1776138439.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저자 flyingtext